시넥도키, 뉴욕, 2008
 감독 찰리 카우프먼
 출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캐서린 키너, 톰 누난, 미쉘 윌리엄스, 사만다 모튼
 
 연극연출자인 케이든은 죽어가고 있다. 영화는 케이든의 늙어감(죽어감)을 릴케의 시처럼 적막하지만 사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케이든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의 삶은 이제 스스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버렸으며, 심지어 자신의 다리 한 쪽, 침 한방울, 눈물 한방울 마저 자기 맘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불쌍한(Pathetic) 처지에 이르렀다. (케이든에게 늙음이란 죽어가는 것이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두렵다. 외롭다.

 I will be dying, and so will you, and so will everyone here.
 And that`s what I wanna explore.
 We`re all hurtling towards death.
 Yet here we are, for the moment, alive.
 Each of us knowing we`re gonna die, each of us secretly beliving we won`t.

 이것이 케이든이 이 엄청난 연극을 기획한 이유다. 케이든은 이 연극 속에 자신을 투영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재현해내려고 한다. 그 안에서 그는 삶과 죽음을 탐구하려고 한다. 케이든은 이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본다. 자신의 주변을 보고, 그 곳에서 어떠한 답을 찾으려한다. (결국 모르겠는 것들 투성이지만) 케이든은 이 연극을 기획하면서 그 안에 모든 사람들을 컨트롤하기 시작한다. (현실에서는 자신의 몸뚱아리조차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그가!) 메모지를 나누어 주고 그들의 행동을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가 만든 세트 안에서 케이든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아니, 그럴 수 있다고 믿었는데, 17년이 지나고 케이든은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 갇혀버린다.
 
 더 비극적인 것은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도 케이든은 점점 잊혀진다는 점이다.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게 되버리면서 그 연극 역시 자신의 컨트롤 밖으로 벗어난다. (자신의 대역, 새미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는 결정을 내리고, 클레어는 떠나고, 새미는 자살한다)
 
 I`ve watched you forever, Caden. But, you`ve never really looked anyone other than yourself.
 So, watch me. Watch my heartbreak. Watch me jump.
 Watch me learn that after death there`s nothing.
 No more watching, there`s no more following, no love.
 Say good-bye to Hazel for me. And say it for yourself, too

 케이든이 헤이즐에게 키스하는 순간, 케이든이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대로 컨트롤하려던 연극은 무의미해지고 새미는 죽는다. 그리고 새로운 케이든으로 앨런이 캐스팅된다.

 The truth is i feel so angry. And the truth is i feel so fucking sad. And the truth is i've felt so fucking hurt. And for just as long I've been pretending I'm okay just to get along, just for... I don't know why maybe because no one wants to hear about my misery, because they have their own. well, fuck everybody. Amen.

 앨런이 케이든이 되고 케이든은 앨런이 된다. 케이든은 통제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통제당하는 사람이 되었다. 올리브가 말했던 케이든의 동성애 파트너 에릭은 처음부터 앨런의 곁에 누워있었고, 케이든은 앨런의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죽음을 맞이한다. 케이든이 헤이즐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헤이즐이 세상을 떠난 그 날밤, 케이든은 죽었고, 앨런이 남았다. 케이든은 비로소 신(앨런)의 메세지에 순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어간다.) 새미가 죽어가는 케이든이었다면 앨런은 케이든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포스트 스크립트 1) 앨런이 곧 케이든이 되는 화면에서 과거와 현재를 마음대로 오고가는 감독의 화법은 사실 좀 많이 어렵다. 마지막에 뉴욕의 지도에서 거대한 연극 세트장을 지팡이로 들추자 그 안에 또 작은 세트장이 나오고 또 그 안에 더 작은 세트장이 나오는 씬에서 감독은 이 영화의 세계관 자체가 꼬이고 꼬여서 이렇게 현실 속의 연극 속의 현실 속의 연극, 아니 현실임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리브가 죽는 장면에서 올리브가 죽자 그녀의 꽃무늬 타투가 한 떨기의 마른 꽃잎을 떨구는 장면은 너무나 시적이라서 아름답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사실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는 희곡으로 읽는 편이 더 나을 뻔도 했다. 영화가 아니라 한 편의 연극같은 느낌이었다. 기록된 연극.

 포스트 스크립트 2) 왜 헤이즐의 집은 불타는 집일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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