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김인순 역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 중 하나다. 작가 이름에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적혀있는 것만 보고도 책 리뷰를 볼 것도 없이 책을 고를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는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작가다. 한국에서도 '좀머씨 이야기'나 '향수'를 통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나는 이 작가의 최고의 소설로 단연 '깊이에의 강요'를 꼽는다. 내가 느끼기에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한가지 독특한 소재에 대해 (한 작품에 딱 한 가지씩만) 특별한 시각으로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특히 그것이 잘 나타나있는 작품이 '콘트라베이스'인데, 콘트라베이스 연주가가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시시콜콜한, 아주아주 시시콜콜한 (그리고 재미없는)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늘어놓는 식의 소설이다. 하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맛깔나는 문체로 전혀 이런 이야기들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작가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런듯 아닌듯 오묘하게 조소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읽은 후에는 생각도 많아지고 그 여운이 오래간다.

 깊이에의 강요는 4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아주 얇은 책이다. 지하철에서만 오가며 봐도 하루면 다 읽을 법한 부담없는 분량은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추천하도록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 책의 첫번째 단편, '깊이에의 강요'는 한 화가가 "이 화가의 그림에는 깊이가 없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에 고뇌하다가 마침내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이야기다. 화가가 죽은 뒤, 이전에는 "깊이가 없다"고 평가했던 평론가는 그녀의 작품 인생에 이러한 마지막 평을 바친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충격적이지 않은가? 젊은 작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을만큼 깊은 좌절과 고뇌에 빠지게 했던 "깊이의 문제"가 평론가의 입에서는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편한대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내뱉어진다는 것이. 이러한 아이러니는 나같이 창작을 벗삼는 사람에게는 역시나 더 짜릿한 충격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Copyright 2009 ⓒ 쏘울풀몬스터 All rights reserved.
위 글의 무단 복제, 수정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2/07 03:52 2009/02/07 03:52

Trackback Address >> http://llblokes.ooci.net/tt/soulfulmonster/trackback/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