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from 읽고나서/프로즈 2009/12/07 22:31
고래
천명관 저

 천명관의 고래만큼이나 대단한 작품을 만나기도 쉬운일이 아니다. 유수의 세계문학들이 있음에도 우리나라 소설들을 좋아라하는 나로써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있음에 그저 감사하고 즐거울 따름이다. 작가 천명관은 대단한 달변가다. 어찌나 말주변이 좋은지 그가 한 번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그 이야기들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그의 문제작 '고래'의 화법은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으면서도 그렇게 감칠맛 날 수가 없다. 선정적인 말들과 상스러운 것들을 여과없이 담고 있는 이 작품은 자칫 저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 한편의 스펙타클하면서도 기구한 신파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관능과 열정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이제 금복의 가슴은 성난 복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르고 통통하던 엉덩이는 안반짝만하게 벌어져, 비록 더러운 옷을 입고 일하는 여자들 틈에 묻혀 있어도 누구나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특히나 젊은 사내들은 진한 생선 비린내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그녀만의 미요한 냄새에 자신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불뚝거리곤 했는데, 금복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사람은 바로 생선장수였다. 그는 오래지 않아 금복이 자신을 떠날 거라는 예감에 늘 불안했다. 금복의 젊고 싱싱한 자궁은 이제 더 강한 사내의 유전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것은 생식(生殖)의 법칙이었다.

 이처럼 고래의 화법은 특별하다. 작품 속 화자가 독자를 직접적으로 호명하면서 작가는 기존 소설의 문법을 사뿐히 넘어서 버린다. 여러 정황으로 어느 시대인지 추측만 가능할 뿐, 작품의 시대적 배경조차 확실하지 않으며,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거대한 코끼리가 등장하기도 하고, 벌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외눈박이가 나오기도 하는 이 작품은 때로는 한편의 환상적인 신화나 전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고래'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거대한 욕망이다. 거대한 몸집에서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전형적인 남성의 생식기의 상징물이며, 이는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원초적인 욕망들의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어갈 기구한 운명에 처해있다. 작품 속에서 시대를 달리하는 세 여인들은 실제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끊이지 않는 욕망과 분노의 순환고리가 삼대에 걸쳐 이어져있다. 그 욕망의 씨앗은 국밥집 노파가 주인집 반편이 아들의 아랫도리 크기에 매료되어 몸을 섞던 그 날 밤으로부터 시작된다. 세상에 복수하려고 돈을 모은다던 노파는 그 억만금의 돈을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되고, 그 노파의 저주는 신들린 수완으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해나가는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에게까지 이어진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소설적 장치들은 하나같이 더 큰 것, 더 강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인해 태어났고, 또 다시 그러한 것들을 낳았다. 눈처럼 부풀어버린 금복의 거대한 욕망이 결국 고래 극장을 짓게 되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불태워버림으로써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리니, 이것은 욕망의 판타지이며, 파멸의 법칙이다.
 
 결국 노파가 뿌린 욕망이라는 이름의 씨앗은 춘희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녀는 바보로 태어났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에 눈을 뜨고, 그리움을 알게 되고 자식에 대한 모성을 느끼게 된다. 괴물같은 몸집에 괴력을 지닌 춘희에게 여성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결국에는 그녀도 한 사람의 여자로 성장을 하게 된다. 혼자 남겨진 춘희는 어미가 자궁에서 아이를 길러내어 낳듯이 섬세하고 기묘한 솜씨로 따뜻한 가마 속에서 벽돌을 빚어내며, 이 벽돌들은 먼 훗날 또 하나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어내는 데 쓰이게 된다. 하지만 어미의 마음으로 빚어진 이 따스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정치인들을 보면, 춘희의 벽돌이 결국 현대인들을 또 다시 크기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꼴이 되었으니, 어찌되었든 노파의 지독한 저주는 계속되는 셈이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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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7 22:31 2009/12/0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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