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3부작
폴 오스터 저
뭔가 대단한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이 든 것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였다. 미처 결말에 가 닿기도 전에 이런 기분이 들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번엔 그랬다. 책의 마지막 한장을 남겨놓고도 나는 섣불리 책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장담하지 못했고, 책을 덮은지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 책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준 느낌만은 너무나 분명해서 이것을 말도 표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잠겨 있는 방'편에서 화자가 팬쇼의 작품을 읽고난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독창적인 작가라고 칭송받는 폴 오스터의 '뉴욕3부작'은 '작가'들이 말하는 언어와 세상이 맺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하는 '작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꾼의 기질을 타고난 '폴 오스터'답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내가 느끼는 대로 마음껏 그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
이 소설이 놀라운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세편의 중편소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유리의 도시'편에 등장하여 피터 스틸먼의 장난에 의해 작가로써의 자아를 잃고 탐정으로써의 자아를 찾아가는 작가 '퀸'은 '유령들'편에서 블랙을 감시하는 '블루' 그리고 팬쇼를 쫓던 '퀸'과 같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의 모든 실마리 또는 중심이 되는 인물, 팬쇼는 '유령들'편의 '블랙', 그리고 보기좋게 퀸을 속여 그를 무너뜨린 '피터 스틸먼'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이 동일인이라는 단서도 없지만, 동일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이 세편의 중편 소설들은 그런 점에서 시대를 달리하는 팬쇼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팬쇼는 계획적인 장난(?)으로 추격자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다. 이로써 추격하는 자도, 당하는 자도 결국에 가서는 거울앞에 선 것처럼 자신의 자아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미스테리한 일련의 과정은 결말을 요구하지도, 그 이유를 묻지도 않기 때문에 소설은 무한히 열린 상태로 결말지어진다. 이런 모호함과 치밀한 유기성때문에 이 작품은 레고블럭과도 같은 높은 해석의 자유도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까지도 나를 흥분시켰다.
반드시 두세번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Copyright 2009 ⓒ 쏘울풀몬스터 All rights reserved.
위 글의 무단 복제, 수정 및 도용을 금지합니다.
폴 오스터 저
뭔가 대단한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이 든 것은 이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였다. 미처 결말에 가 닿기도 전에 이런 기분이 들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번엔 그랬다. 책의 마지막 한장을 남겨놓고도 나는 섣불리 책의 줄거리가 무엇인지 장담하지 못했고, 책을 덮은지 몇 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이 책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이 내게 준 느낌만은 너무나 분명해서 이것을 말도 표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잠겨 있는 방'편에서 화자가 팬쇼의 작품을 읽고난 것과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독창적인 작가라고 칭송받는 폴 오스터의 '뉴욕3부작'은 '작가'들이 말하는 언어와 세상이 맺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하는 '작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야기꾼의 기질을 타고난 '폴 오스터'답게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내가 느끼는 대로 마음껏 그 주제를 뽑아낼 수 있다.
이 소설이 놀라운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세편의 중편소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순환고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유리의 도시'편에 등장하여 피터 스틸먼의 장난에 의해 작가로써의 자아를 잃고 탐정으로써의 자아를 찾아가는 작가 '퀸'은 '유령들'편에서 블랙을 감시하는 '블루' 그리고 팬쇼를 쫓던 '퀸'과 같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소설의 모든 실마리 또는 중심이 되는 인물, 팬쇼는 '유령들'편의 '블랙', 그리고 보기좋게 퀸을 속여 그를 무너뜨린 '피터 스틸먼'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들이 동일인이라는 단서도 없지만, 동일인이 아니라는 증거도 없다.) 이 세편의 중편 소설들은 그런 점에서 시대를 달리하는 팬쇼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팬쇼는 계획적인 장난(?)으로 추격자의 정체성을 흔들어 놓는다. 이로써 추격하는 자도, 당하는 자도 결국에 가서는 거울앞에 선 것처럼 자신의 자아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 미스테리한 일련의 과정은 결말을 요구하지도, 그 이유를 묻지도 않기 때문에 소설은 무한히 열린 상태로 결말지어진다. 이런 모호함과 치밀한 유기성때문에 이 작품은 레고블럭과도 같은 높은 해석의 자유도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 점이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까지도 나를 흥분시켰다.
반드시 두세번 반복해서 읽을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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